[영화·공연]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버지 이야기
국제시장 (Ode to My Father) 감독: 윤제균 출연: 황정민, 김윤진 장르: 드라마 등급: 없음(한국은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국제시장(Ode to My Father)'의 목적은 또렷하다. 웃음과 감동이다. 작정하고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더 이상의 대의 같은 것은 없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라던가, 주인공의 삶의 저변에 깔린 역사 의식 같은 것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찌 보면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그러려고 만든 영화다. 극장 안에 앉아있는 시간 동안만큼은 그런 거대한 의미 따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인공이 온몸으로 겪어내는 시대의 아픔에 함빡 빠져 그 삶의 여정을 좇으며 깔깔대고 웃다, 한숨을 쉬다, 눈물을 훔치다, 잔잔한 미소를 짓길 반복하게 된다. 그게, 바로 이 철저한 상업영화 '국제시장'의 힘이자 존재이유다. 영화는 주인공 덕수(황정민)란 인물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주요 지점들을 펼쳐 보여준다. 6·25 전쟁 당시 흥남 철수 난리통에 아버지와 막내 동생을 잃어버린 덕수는 그 마음의 빚을 떠안은 채 평생 희생과 노력으로 남은 가족을 지킨다. 피난 와 국제시장에 정착해 악착같이 일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덕수는 어머니와 두 동생을 편히 부양하기 위해 파독광부, 베트남 참전 등의 고된 선택도 마다 않는다.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평생의 짐으로 남았던 아버지와 동생 찾기에도 나선다. 하루하루가 고생길이다. 그사이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긴다. 그러나 덕수는 늘 장남의 굴레를 기꺼이 진 채 이를 견뎌낸다. '국제시장'은 여러 면에서 '포레스트 검프'와 비교될 만 하다. 역사의 주요 지점마다 주인공을 자리시켜 극을 진행시킨 방식이나, 적절한 웃음과 드라마의 균형을 찾아낸 감각 등이 그렇다. 충분히 더 장황해질 수도 있었던 극을, 적절한 에피소드만 골라 깔끔하게 다듬어 이어붙인 솜씨는 오히려 '포레스트 검프'보다 뛰어나 보이기도 한다. 베트남 전이나 이산가족 상봉 에피소드가 너무 감상적으로 빠질 만 할 때 즈음, 다시 시점을 현재로 옮기며 분위기를 환기시킨 리듬감은 특히나 칭찬할 만 하다. 다양한 웃음 포인트로 자칫 최루성 역사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던 극에 활력을 불어넣은 시도 역시 좋았다. 특히 평생을 함께 해온 덕수의 친구 달구(오달수)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유머나 정주영, 앙드레 김, 이만기, 남진 등을 극 속에서 잘 녹여내 카메오 아닌 카메오로 활용한 아이디어도 빛난다. 황정민과 김윤진이 연애시절, 부부시절, 노년시절을 막론하고 천역덕스럽게 대사를 주고 받으며 만들어내는 깨알 웃음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포레스트 검프'가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게 태어났음에도 그 모든 역사의 풍파와 상관없이 한 개인으로서의 행복과 존엄을 지켜낸 이의 이야기로 감동을 줬다면, '국제시장'은 남들보다 뛰어났음에도 개인의 꿈과 바람은 철저히 거세한 채 역사의 흐름에 휘말려 살아야했던 주인공의 고단한 삶을 미화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덕수로 대표되는 모든 아버지들의 거칠지만 숭고한 나름의 사랑 방식을 보여주는 효과적 방법이기도 하지만, 가족으로 대표되는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고 아름다운 것이란 식의 해석이 생겨날 수 있는 여지는 분명 논란의 실마리를 남긴다. "모든 게 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낀데…그래도 기왕 일어나삔거 우리 애들이 아니고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 아이가?"하는 덕수의 대사가 일부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주며 얘깃거리를 낳고 있단 점이 그 반증이다. 현재 '국제시장'은 한국에서 개봉 보름여 만에 500만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 돌풍 반열에 들어섰다. 온 가족이 함께 극장에 가 시원하게 웃고 울고, 극장 밖을 나와서도 훈훈한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해줄 만한 영화이니, 흥행의 이유는 충분하다. 자녀를 위해 희생한 부모에 대한 고마움과 60~80년대 어려웠던 한국에 대한 향수가 유난히 짙게 서려있는 한인 사회에서는 더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하다. 북미지역에서도 지난달 25일 LA CGV 개봉, 오늘(2일) 패서디나 램리 플레이하우스 개봉에 이어 오는 9일부터 북미 전지역 40여 개 관에서 본격적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미국에서 개봉하는 한국영화로는 최대 규모다. 자세한 개봉관 리스트는 CJ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 www.CJ-Entertainment.com)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